요즘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어떤 일을 보고
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저만의 논리, 아니 논리이기를 포기한 망상에 가까까운 이야기입니다. 이 글의 대부분의 문장은 '저는 ~라 생각합니다'를 축약한 것입니다.
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올바르고 합리적이며 이타적인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.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다면 실체가 무엇인지, 어째서인지는 모르더라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. 그리고 그걸 바로잡고자 하는 것 역시 본성이지요.
동시에 인간은 잘못되고 불합리적이며 이기적인 본성을 갖고 있습니다. 모순이라고요? 두 가지 본성이 서로 똑같이 드러난다면 그렇겠습니다만 실제로는 둘 중 어느 한 쪽이 표현되게 마련이죠. 이 중 어느 쪽에 넘어가느냐의 문제지요.
저는 성선설을 믿습니다. 이 말인즉 인간은 기본적으로 '양심적'이라는 거지요. 따라서 순수한 인간은 위에서 말한 속성들, 즉 '올바르고 합리적이며 이타적인', 쉽게 말해 선한 본성을 띄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.
저의 이런 생각을 잘 나타낸 만화가 있습니다. 강도영 작가가 최근 연재중인 '26년'이라는 작품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. 광주 항쟁, 마지막 도청 공격이 있기 전, 한 시민군의 대사입니다.
'사실 나는.. 민주주의고 뭐고 잘 모르겄소. 그저.. 다만.. 나라를 지키겠다는 군인들이 정권 잡겠답시고.. 멀쩡한 시민틀 총으로 쏴 죽이고 패 죽이고 찔러 죽이고.. 정말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어라..'
- 강도영 작가, '26년' -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편
- 강도영 작가, '26년' -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편
무언가 잘못됨을 느끼고 바로잡으려 하는 것, 이런 모습이 인간의 본 모습이라 생각합니다. 하지만 저것은 순수한 인간의 본성이고, 여기에 사회에서의 학습을 거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.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거나, 느끼면서도 나서지 않게 되는 거죠. 문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마는 겁니다.
이것은 특히 자신에게 피해가 올 것 같을 때 두드러집니다. 불쌍한 거지에게는 선뜻 적선을 하면서도 폭행범의 재판에 자발적으로 증인출두할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. 귀찮고 골치아픈 일이거든요. 실로 절묘하게 이기적인 양심입니다.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양심의 소리를 애써 무시하는 것이라는 게 정확할까요?
게다가 세뇌의 효과가 들어가면 상황은 완전히 반전됩니다. 잘못된 가치에 물들어버리고 급기야는 그 가치를 변호하게 되지요. 주로 자신에게 멀게 느껴지는 것일 경우 현혹당하기 쉽습니다. 그 가치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양심의 소리는 울리지 않습니다. 양심이 깨어나려면 무언가 계기가 필요한데, 그 계기가 너무나 먼 곳에 있기 때문이죠.
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 세뇌의 효과가 만연해 있는 것 같습니다. 잘못된 일에 무관심한 걸로도 모자라 오히려 잘못을 변호하는 사람들이 넘치고 있습니다. 자신에게 득이 되는 일이라 변호한다고 하면 인간 본성의 이기주의가 표현된 것이라 하겠습니다만, 오히려 해가 되면 되었지 전혀 득이 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, 어떤 매체를 통해 그렇게 세뇌되어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.
안타깝고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. 목소리 내는 인간 라디오의 소리가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또 다른 세뇌를 낳습니다.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선한 사람들이 또다시 세뇌되고 목소리는 더욱 커집니다. 우리의 부모가, 친구가, 그리고 우리가 세뇌되고 있습니다.
이런 잘못된 현실을 보고서도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는, 아니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자위하는 저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볼 때면 더욱 마음이 답답합니다. 이 답답함도 한때이고, 자고 일어나면 또 그저 그런 속물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니 더욱 답답합니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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